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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으로의 귀환

松 河 2019. 4. 29. 09:48

   학생으로의 귀환

     

 

누군가 그랬다.

살아보니 공부가 제일 쉬운 것이었다고.....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정말 죽어라 공부만 하겠다고....

 

이제 나는 내 삶이, 굵거나 가늘거나 나이테를 훈장처럼 달고 그 말의 의미를 음미해 볼 수 있는 나이에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학생이라는 옷을 다시 입어, 살아보니 제일 쉬운 것이라고 하는 공부를 시작 해 보려고 한다.

 

네온의 발광이 점차 어둠을 쓸어 갈 무렵

수십 년을 줄기차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낭만 술집에서 수육에 파전 그리고 동동주를 앞에 두고 오랜 친구들과 마주 앉았다. 퍼질러 앉은 그곳엔 잡다한 일상이 있고, 한잔 또 한 잔 꺽여 스러지는 술잔에 맞춘 떠벌림이 있었다. 알 수 없는 말들이 뒤 섞인 채 허공을 분주히 맴돌고 주변은 더욱 산만해져 가고....

 

어느 덧, 취중 분위기가 정치, 경제, 사설을 넘어 진심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 입에서 우리 다시 공부 해 볼까라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모두 열심히 살긴 살았지만 가난이 만연하던 시절,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것들을 이제부터라도 다시 배워 보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삶에 지쳐 또는 헛된 놀음에 빠져 인생을 더 이상 허비하지 말고 공부에서 소확행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일순 우리는 인생을 허비한 죄인으로서 다 같이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인생을 허비한 죄!

그날의 술자리 이후 나는 나를 위한 변화를 시도했다.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았지만 다시 배우는 자의 입장에 서기로 했고, 배우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을 들어 미루어 오던 것을 학습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나는 학생이 되었다. 학생!

사실 지난 날 전공학과를 선택할 때 공부하고 싶은 과목은 따로 있었지만, 주변의 비관적인 태도와 부정적 시각으로 현실과 타협, 안주할 수 있는 학과를 택해 진학해야 했기에 미련이 남았던 학과를 망설임 없이 선택하여.....

 

최근 과제물이라는 억압으로 한편의 시집을 읽었다.

읽는 내내 시인의 정서와 닮은 기억과 추억이, 그의 질문과 구함과 고독이, 마치 나의 것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잊고 살았던 별을 관통하는 바오바브나무와 세발자국만 움직이면 석양을 볼 수 있는 어린왕자의 조그만 별과 왕이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은, 명령이 이치에 맞는 까닭이라는 말들.... 젊은 날 읽고 되 뇌이던 글귀들이 요란스럽게 되 살아 났다. 단호하게 굳어져 버린 사고와 신분증과 자동차로부터 해방 되어 과거로의 회귀가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그널의 주입,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반면, 현실의 메마름 속에서 얻은 이러한 달콤한 감성적 주입은 닥친 현실의 벽 앞에서 아뿔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윤활유 빠진 뇌 속에 잠시 잃어버렸던 감성만 남아 있었을 뿐 이었구나 라는 걸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학생으로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평가. 시험!

시스템에 의해 평가 되고 관리되기 때문에 인간적 봐 줌이 없다는 시험... !

 

활자가 맺히지 않는 눈과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 스륵 스륵 책장을 넘기다 보니 지난날 학창시절 과제물에 의해 헝클어졌던 기억과, 시험에 대한 공포와,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며 재발이 된다.

 

상아탑이라고 그랬던 교정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나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람... 부끄러운 점수는 면해야 하는데 어쩌나 하는 강박관념이 똬리를 틀어 후회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해 하릴없이 커피를 연거푸 마셔 본다.

 

하지만 주저 없이 스스로 선택한 자가 할 말이 뭐가 있을까

그저 밑줄 긋고 형광펜 칠하고, 첫 글자 모아 태정태세 문단세.....’처럼 만들어 볼 밖에......

 

! 이렇게 나의 학창시절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평가가 어떻게 나오던 간에 녹슨 머리에 기름을 쳐 가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으니 소양함양의 자기계발은 될 것이다. 당초 시작은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까지 노려 보자였으나 이제 이렇듯 목표를 낮춰 잡고 있으니 한결 마음의 부담도 덜어져 있음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학점이 B플러스 이상만 나오면 1년 내내 곡차를 산다고 하는 지인이 있어 내심 B플러스 이상은 기대해 보며, 시험 본 결과를 부풀려 지인의 긴장을 촉발해 본다. 이것으로 소확행을 삼으며.......

 

                                      바람 불어 좋은 날.... 내게 있어 가장 젊은 날.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