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 河 2018. 11. 23. 10:02


! 봉정암

 

 

늘 와 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이것에 걸고 저것에 걸며 살다보니 반백이 다 되어 이제야 찾아오게 되었다. 진작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찾아오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변명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는 석양에 그림자의 음영이 녹아들어가는 시각쯤 산사에 당도하는 순간, 준비된 변명은 이미 퇴색된 궁색함이 되어 있었다. 여기가 늘 와 보지 못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가지게 했던 그 곳. 적멸보궁 봉정암!

 

드디어 왔다 내가.

 

봉정암 대웅전에 들러, 경애의 예를 갖춰 삼배를 하고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석가모니 진신 사리탑이다. 전해 듣기도 하고 사진으로도 보던 부처님 진신 뇌 사리 탑. 왠지 경외심을 가지게 하는 탑신 앞에서 두 손 합장하고 눈을 감으니 머리에 환한 불빛이 들어오는 듯 싸아한 청량감마저 들게 한다.

 

내게는 이 탑이 언제 세워졌든, 인간이 정한 보물이든 아니든, 종교적 편향이든 어떻든 중요치 않다. 그저 이 자리에 천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모진 풍파를 견디며 아귀 군상의 모든 염원을 들어주었을 그 모습만이 보물로 자리할 뿐.......~ 천년바위를 깍아 기단을 만든 탓 때문일까, 부처님 진신사리를 품고 있다하여 그런 것일까.... 어둠에 쌓여 자체 발광하는 듯 한 모습으로 천사백 여년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온 탑신은 기이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알 수 없는 복받침을 느끼며, 저마다의 서원을 안고 이 곳을 찾았을 천년흐름의 중생들 발자취를 거슬러 본다.

 

봉정암으로 출발.

 

봉정암으로 출발하는 나는 소풍가는 들뜬 초등학생의 기분이었다. 오래 동안 가보고 싶던 곳을 찾아 간다는 마음에 들떠, 전날의 숙면은 이미 날려 버렸지만 몸은 아주 가벼웠다. 가지도 않았는데 봉정암의 기를 이미 받은 것일까...

 

혼자 훗! 웃음을 지어 보며 새벽 6시의 여명을 맞아 350를 타고 갈 버스에 탑승... 가는 내내 함께한 지인들과의 꾸미지 않은 대화와 나누어 먹은 음식들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가까움이었다.

 

드디어 먼 길을 멀다는 느낌 없이 달려와 내설악 용대리에 도착하니 이미 봉정암에 다다른 기분... 어깨는 한 층 가볍다. 이런 기분이면 그 힘들다는 대청봉도 한달음에 정복할 것만 같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향하는 마을버스의 긴 줄도 잠시, 수렴동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외길에서 가다 비켜서다를 몇 번하니 이미 백담사 다리에 위에 서있거나 이내 점심으로 준비된 미역국을 떠먹으며 참 깔끔하고 맛있네를 연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금강문 앞에서 함께하는 지인들과 단체 사진을 찍을 쯤의 나는 이미 환희의 정복자가 된 듯 하여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우쭐한 기분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출발해야 해 지기 전에 당도할 수 있다하니 백담사의 사찰경내를 둘러보지 못한 여운을 뒤로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출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백담사 계곡에 쌓여진 수많은 작은 탑들의 염원을 뒤로하고 봉정암으로 출발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미리 얻어 들은 무척 힘들다는 정보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으나, 산세에 비해 의외로 잘 닦여져 있는 트레킹 코스 같은 내설악 수렴동 계곡의 길은, 무리 없이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그저 터벅터벅 걸으며 하나하나 머물던 곳의 시름을, 바위를 감고 흐르는 계곡 물로 떠내려 보낼 수 있었던 그런 가지 않았던 길......

 

어깨에 맨 배낭의 무게가 무겁다고 느껴질 즈음 당도한 영시암.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 3.5를 걸어 왔다. 오는 내내 내설악의 계곡은 속살을 훤히 들여다보이며 청정한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오기를 잘했다 참 잘했다를 연발하게 했다.

 

하지만 영시암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읏쌰! 하고 출발하려하니 아뿔싸! 처음의 가뿐함은 이미 사라져 있음을 발견!... 7.1 를 더 가야 한다는 이정표에 아직도!!!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고 에고~ 힘든 길이 맞구나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또 걸었다. 영시암에서 봉정암까지 7.1....

 

이 길은 고행의 길이니 메고 지고 오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거야...

아름드리 괴목이 쓰러져 길을 가로 막고 누워 있는 곳에서는 허리를 굽혀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겠지....

깍아지른 듯 하면서도 대장군의 위용을 뿜어내는 천년 바위 앞에선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라는 것일 거야...라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구름다리를 건너 쌍용폭포를 지나 그렇게 걸었다.

 

잠시 계곡에 발을 담그며 여유를 부려 보기도 했지만 갈 길이 멀고 6시가 넘으면 밥(저녁 공양)을 안준다고 하니 이 못난 속인은 굶지 않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이쯤 되다보니 이미 경치...운치...라고 하는 것은 진즉 눈 밖에 났다. 오로지 저 높은 곳에 있는 그 곳을 향해 갈 길을 가야할 뿐....

 

드디어 다 와 가는 가 보다. 인터넷으로 학습된 깔딱고개 푯말을 보는 순간 안도감이 드는 건 왜일까. 먼 길을 돌아 도라 이제야 오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보다 이제라도 오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이 큰 때문일까.....

 

한걸음이 천근에 달하지만 반겨주는 다람쥐에게 일용할 양식을 준다는 핑계로 쉬고....저 놈이 나를 보고 도망도 안치네 하며 또 쉬고... 그렇게 드디어 봉정암에 도착했다.

 

밥시간(공양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지만 그래도 미역 냉국밥(?)을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었고, 배정 받은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음으로 다리를 쭈욱 펴 본다. ! 이 곳이 봉정암....

 

얼음 같은 물이 긴 시간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며 샤워를 한 후,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경내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본다. ~ 저쪽에 몸담고 살았던 곳에서도 이러한 마음을 먹고 살았다면 미움도 원망도 없었을 것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구나....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것마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있는 저심하기의 발현에 또 감사....

 

세속으로 돌아와

 

짧은 시간의 봉정암 방문이었지만 어느 가람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경이로움을 간직한 채 돌아와 되새겨보는 시간....

바람에 실려 울리던 사리탑전 스님의 목탁소리와 경소리는, 바위처럼 합장하여 그림자 되던 모습과 함께 이미 저만큼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있으니 중생으로 사는 사람은 참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러나 일생에 3번은 가봐야 한다고 하니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아쉬움을 담아 고이 추억으로 접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