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다듬다
■ 운명을 다듬다
공간 선택으로 운명을 바꾼 풍수 이야기
공간을 바꾸면 운명도 바꿀 수 있다.
행복한 삶을 끌어당기는 ‘터’는 어디?
풍수는 주어진 운명을 바꾸는 공간선택의 문제
풍수지리는 공간적으로 어떤 조건과 환경이 이뤄져야 삶을 풍요롭고 평온하게 영위할 수 있는 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같은 건물 안에서도 배치에 따라 각기 그 공간에 응축된 기운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간이 달라지면 존재하는 에너지의 작용이 달라져서 기운이 바뀌기 마련이다. 기운이 달라지면,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관점이 달라지고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고, 옳고 그름의 기준과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달라진다. 사유의 가닥이 갈리면서 운명도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공간선택은 곧 운명을 가다듬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풍수에서 열망하고 원하는 것이 바로 타고난 운명도 바꾸겠다는 것이다.
세상천지간의 혼돈 속에 놓인 운명도 내 의지대로 바꾸고 다듬어보겠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풍수지리는 곧 공간선택에 관한 문제다. 풍수가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이라거나, 혹은 미신에 가까운 숙명론적인 타령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공간구분 내지는 공간선택이라는 것이다.
‘터’를 찾는 것이 진정한 자기계발
그렇다면 나의 공간은 어디일까? 삶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어떤 공간을 선택해서 바꿔야 하는가? 지금 나는 제대로 된 올바른 공간에 서 있는 것일까?
저자는 살아있는 사람의 자리가 죽은 자의 자리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돌아가신 부모를 좋은 터에 잘 모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계신 부모를 좋은 집터에 잘 모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지금 일하는 사무실이나 공장도 나의 운명과 연관이 된다는 얘기다.
이 장면에서 저자는 손수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다듬어 형상을 만들어가듯이 내 운명을 내 의지대로 다듬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풍수를 직업으로 삼기까지, 우연히 스승을 만나 10년의 세월을 바쳐서 법을 얻고, 다시 10년간 주변을 가다듬고 스스로 법을 세웠으며, 또 10년을 현장에 적용해보는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런 만큼 실전사례를 모아서 책으로 엮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풍수법의 원리를 깨우치는 과정에 대해서도 저자는 체험을 바탕으로 솔직한 얘기를 들려준다.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 배운 풍수법의 경지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 대해서도 소상히 적어놓았다. 책으로 익힐 수 있는 풍수지리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론은 단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할 뿐이라고도 했다.
지은이
일봉 김경우(日峰 金庚佑) 풍수마루 주인. 1955년 경북 청도 출생. 나이 서른셋에 풍수 스승인 스님을 만날 때까지 20여 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온갖 직업과 사람들을 경험했다. 스님과 함께 답산을 통한 풍수 공부로 세월을 보내던 중, 7년째 되던 해에 경기도 가평군 광덕산 촛대봉에서 오감이 열려 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0년간 스스로 자신을 돌보면서 내 집터를 잡고 부모님의 산소를 모셨다. 다시 10년간 주변 사람들의 풍수 일을 거들었다. 2010년에는 팔공산 동화사의 불사자문위원으로 약수암과 대견사의 중창을 도왔다. 한국성씨총연합회 전문위원으로 계간지〈한국성씨문화〉에 글을 싣고 있다. 풍수의 길로 들어선 지 28년 만에 비로소 스스로 일군 사례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차 례
1부 산을 더듬다
동화사 약수암의 힘/법당 위에 올라앉은 부도탑/장군의 칼/100년 된 금장실의 기와불사/일제가 헐어 낸 대견사/늘그막에 밭갈이/화염에 그슬린 시신/눈 안에 손가락뼈/서쪽 기운이 세면 막내딸이 잘 풀린다/엉터리에서 조선 최고로 달라진 평가/호랑이 발치에 새끼 꿩/오시 하관에 햇무리/땅은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소쿠리 같은 집터/흰 사슴의 촉촉한 콧잔등/당산나무가 지켜 온 터/복숭아처럼 봉곳하게 생긴 묘터/꿈속에 큰 소나무/처남이 데리고 온 풍수/지극히 바라던 바로 그 터/편안한 평지룡/용이 날아오르는 땅, 비룡상천
2부 오감이 열리다
범쟁이집 둘째 아들/땅속을 들여다보다/닭 장수에서 광고장이로/무진년에 맺어진 인연/가르쳐 주면 눈을 멀게 한다/산을 더듬어라/터에도 마음이 있다/꽃이 붉으면 물도 붉어진다/뒷발차기하는 용/방위의 기준점은 나 자신/초라한 2층 셋집/사선으로 낸 현관문/문장대의 관음성좌/광덕산 촛대봉/마음과 마음으로, 눈과 눈으로/달리는 차 안에서 본 터/사촌은 데리고 다니지 말라 /고을군수가 염원/한 번의 개화로 모든 문제 해결/쌓인 재물이 문제/깃땅 안쪽의 절터/계란껍질 같은 터
3부 풍수는 곧 마음
명각(明覺)하면 남의 말이 들린다/주변 100리가 먹고사는 땅/밀장된 자골(磁骨)이 부른 백골죄/혈처는 공허한 것/가야산의 풍수 형국은 사군자/문지방 이야기/대학에서 가르치는 풍수/반풍수가 집안을 잡아 나가는 방법/괘등혈에서 나온 호롱바위/자전거 타기와 같은 수맥 찾기/눈이 열린 후 다시 10년/답산 모임 풍수마루/조그만 흙더미/인연 깊은 영지사/마당 깊은 공장 터/풍수 해석의 유연성/마음에 담아 보는 터/땅을 보는 깊이/산과 봉우리/8대 명당의 옆자리 터/두 번 보상받은 해탈사/평등 무자비/납작재의 힘/명당의 기운을 타고난 사람, 의존하는 사람
4부 풍수 답산기
풍수 키워드로 분양 광고/비슬산이 품은 제왕의 기운: 대구 테크노폴리스/겨울 찬바람과 맞서는 깐깐한 선비의 기개: 구지 대구 국가산업단지/똬리를 틀고 앉은 편안한 용 한 마리: 대구 대곡 2지구/열심히 책 읽는 선비: 대구 연경 택지지구/거팔래팔(去八來八)의 풀무 형국: 포항 블루밸리 산업단지/500년 후에 자기 땅에 다시 묻히다: 왜관 벽진 이 씨 입향시조묘/좋은 집터에 부모 모시기/김해 김 씨 삼현파 선산 이야기
본문 속으로
풍수지리는 인간의 생명 유지에 근본이 되는 물, 공기, 햇빛 그리고 시간을 어떤 환경 조건의 공간에서 생활해야 가장 이상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축적된 경험과 이론을 통해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장소 선택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즉, 풍수의 핵심은 공간 선택이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
모든 씨앗이 다 싹을 내는 것이 아니듯이 터라고 해서 다 쓰이는 것은 아니다. 수억 년 동안 힘을 비축하고 기운을 응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옳고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터가 가진 기운을 세상에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없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필연이라 할 것이지만 우연히 어느 시기에 엉뚱한 사람이 나와서 마구잡이로 터를 부순다면 수억 년 터의 의지는 그냥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필연이라고 한다면 터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천하를 경륜할 만한 자질을 가지고도 시대와 사람을 잘못 만나서 그냥 범부로 살다 가는 것처럼 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터에도 마음이 있다” 중에서
풍수는 생명에너지 발생조건학이다. 세상에 엮여있는 생명에너지가 어떻게 발산되고 수렴되는지 느끼고 깨닫는 것이 풍수인 셈이다. 무엇이 사람을 생동감있게 만들고, 어떤 조건을 갖춘 환경이라야 사람에게 좋고 편안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방위의 기준점은 나 자신” 중에서
유가, 불가, 도가의 그 바탕에는 풍수사상이 가미되지 않은 가문이 없다. 무릇 존재는 장소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장소를 전제로 한다. 모든 학문은 시간과 공간 사이에 현재의 내가 있음을 뜻한다. 여기서는 삼진법이 전부다. 과거, 현재, 미래가 전부다. 그래서 이것과 저것 사이에 주관하는 주체, 즉 하늘과 땅이 있고 생명 혹은 사람이 있다. 더 붙이면 사족이다. 수법과 이기를 떠나서 모든 것이 세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것이 삼합이다.
-“문장대의 관음성좌” 중에서
풍수를 환경공학이라고도 한다. 어떤 환경 아래서 습관이 쌓여 운명을 바꿔 놓는 것이다. 풍수는 출발점이 호리지차, 즉 머리카락 같은 미세한 차이일지라도 그것이 10리 밖에서는 하늘과 땅으로 갈라진다고 했다. 문지방을 밟는 것과 넘는 것의 차이도 그와 같을 것이다.
-“문지방 이야기” 중에서
이에 비하면 이인손 본인의 묘는 회벽도 훨씬 얇고, 관도 허술해 보였다. 남편의 정성스런 손길로 매만진 부인의 묘가 정작 자식들이 만든 본인의 묘보다 눈에 띄게 튼튼하고 빈틈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식들의 손기른 그저 대충대충이어서 부실공사에 가까웠다. 속설처럼 아무래도 배우자의 손길이 자식 손길보다 따뜻하다는 말이 언뜻 수긍이 갔다.
-“500년이 지나서 자기 땅에 묻히다” 중에서
우리가 어떤 공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요소들과 어울려 공간 안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진다. 공간 선택의 갈래를 따라 세상이 엮여 돌아가는 순서와 모양이 달라진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나마 공간 선택을 통해 우리의 운명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이다. 공간 선택과 맞물려 ‘운명을 다듬는다’는 말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풍수지리는 적극적으로 공간 선택을 통해 운명을 다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풍수지리를 통해 공간을 선택하고 구분 짓는 것은 바로 운명을 다듬는 행위다. 이러한 뜻에서 풍수지리는 ‘운명’이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에 속한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숙명’과 달리 ‘운명’은 내가 나서서 어루만지고 주물러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중에서